장미빛 어흥!
(...) 그리고 이런 기복주의 신앙은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의 기층을 차지하는 샤머니즘, 혹은 무교의 바람직스럽지 못한 영향 때문이라는 진단이 별반 고민 없이 내려지고 또 받아들여진다. (...) 한국인들의 기층적 종교 심성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제대로 규명되지도 않은 일종의 '이념적' 개념인데 (...) '무교는 우월한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기복에만 치중하는 좀 열등한 신앙체제'라는 (...) '무교의 기복은 정상적이지 않다'라는 또 하나의 '검증받지 못한 판단'이 숨어있음을 (...) 과연 그러한가? (...) 기복을 개인주의적 축재나 그 이상을 넘어서는 이기적 행위의 연장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시도는 기실 무교적인 신앙행태에 대한..
(...) 매우 젊은 시절에 처음으로 네덜란드에 갔을 때 거기 사람들은 내가 독일인이고, 자기 친척들이 나치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이유로 나와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내게 분명했던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사실 나는 너무 어렸다―이들이 등을 돌리고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언어로나 문화로나 유산으로나 죄책과의 관련성 안에 살고 있는 인간 사회에 속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로부터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 그리고 이 객관성이 죄 개념의 일부이다. 또한 죄는 확실히 나의 결정, 나의 자유 의지, 하느님에 대한 나의 "부정"이지만 또한 내가 타고난 나의 운명이다. (...) 그리고 집단적 죄를 말하는 것이 부적절하..
만약 여기서 설득력 있는 하나의 해결책이 있다면, 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비하(卑下)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만이 고난을 받도록 버려두지 않고, 십자가에서 우리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 하나님은 단지 동정만 하지 않고, 함께 고난을 받는다. 다른 모든 해결책들은 신정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억압한다. 신정론 문제는 오직 여기서만 – 십자가에서만 – 해결된다. 만약 기타모리가 “고통”을 “하나님의 본질”로 보았다면, 그의 하나님의 고통의 신학은 이런 방향으로 생각한 것이다. “인간의 고통”은 하나님의 고통의 한 가지 상징이다. 오직 우리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고통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 한스 요나스가 말하듯이 – “고난을 받는 하나님”이며, 결코 전능한 원격조종자가 아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