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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푈만 <교의학> 본문

한 줄, 여러 줄

H.G.푈만 <교의학>

승리의핑크호랑이 2017. 12. 16. 23:18

만약 여기서 설득력 있는 하나의 해결책이 있다면, 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비하(卑下)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만이 고난을 받도록 버려두지 않고, 십자가에서 우리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 하나님은 단지 동정만 하지 않고, 함께 고난을 받는다. 다른 모든 해결책들은 신정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억압한다. 신정론 문제는 오직 여기서만 – 십자가에서만 – 해결된다. 만약 기타모리가 “고통”을 “하나님의 본질”로 보았다면, 그의 하나님의 고통의 신학은 이런 방향으로 생각한 것이다. “인간의 고통”은 하나님의 고통의 한 가지 상징이다. 오직 우리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고통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 한스 요나스가 말하듯이 – “고난을 받는 하나님”이며, 결코 전능한 원격조종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전능은 무능 안에 숨겨져 있다.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는 오직 다음과 같은 해결책만이 설득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악의 희생자이며, 악을 허용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대가 홀로 악을 감수하지 않도록 그대와 함께 악을 감수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대와 함께 감으로써 악을 거둬들인다. 물론 이로부터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제공될 수 있을 법한 하나의 변증론적인 탁상이론을 다시금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신정론 문제에 대한 대답을 주며, 신정론 문제에 대한 우리의 모든 대답을 설명한다. 신정론 문제는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 앞에서 침묵한다.
pp235-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