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 줄, 여러 줄 (5)
장미빛 어흥!
(...) 그리고 이런 기복주의 신앙은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의 기층을 차지하는 샤머니즘, 혹은 무교의 바람직스럽지 못한 영향 때문이라는 진단이 별반 고민 없이 내려지고 또 받아들여진다. (...) 한국인들의 기층적 종교 심성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제대로 규명되지도 않은 일종의 '이념적' 개념인데 (...) '무교는 우월한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기복에만 치중하는 좀 열등한 신앙체제'라는 (...) '무교의 기복은 정상적이지 않다'라는 또 하나의 '검증받지 못한 판단'이 숨어있음을 (...) 과연 그러한가? (...) 기복을 개인주의적 축재나 그 이상을 넘어서는 이기적 행위의 연장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시도는 기실 무교적인 신앙행태에 대한..
(...) 매우 젊은 시절에 처음으로 네덜란드에 갔을 때 거기 사람들은 내가 독일인이고, 자기 친척들이 나치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이유로 나와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내게 분명했던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사실 나는 너무 어렸다―이들이 등을 돌리고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언어로나 문화로나 유산으로나 죄책과의 관련성 안에 살고 있는 인간 사회에 속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로부터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 그리고 이 객관성이 죄 개념의 일부이다. 또한 죄는 확실히 나의 결정, 나의 자유 의지, 하느님에 대한 나의 "부정"이지만 또한 내가 타고난 나의 운명이다. (...) 그리고 집단적 죄를 말하는 것이 부적절하..
만약 여기서 설득력 있는 하나의 해결책이 있다면, 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비하(卑下)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만이 고난을 받도록 버려두지 않고, 십자가에서 우리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 하나님은 단지 동정만 하지 않고, 함께 고난을 받는다. 다른 모든 해결책들은 신정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억압한다. 신정론 문제는 오직 여기서만 – 십자가에서만 – 해결된다. 만약 기타모리가 “고통”을 “하나님의 본질”로 보았다면, 그의 하나님의 고통의 신학은 이런 방향으로 생각한 것이다. “인간의 고통”은 하나님의 고통의 한 가지 상징이다. 오직 우리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고통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 한스 요나스가 말하듯이 – “고난을 받는 하나님”이며, 결코 전능한 원격조종자가 아니다. 하..
(...) 고린도전서 6:1-8 (...) 로마의 형사법은 상대적으로 공정했던 반면 민사소송은 좀 다른 식으로 작동하였다. 분쟁하는 소송 당사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얻기 위해 재판관에게(또한 가능한 경우는 배심원에게도) 유인책을 제공했던 것이다. (...)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민사법정으로 끌고 가는 부류는 오로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뿐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공격하고 있는 대상은 책임감 있는 공정한 법의 사용이 아니다. 여기서 바울이 비난하는 것은 (...) 부적절한 조작 행위 (...) pp47-48.
(...) 그들은 이미 예수의 지상 사역에서 예수가 인자로 왔을 때 누릴 권세를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는 전체 전승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서 초대 그리스도교는 부분적으로 예수의 실제 사역과 교훈의 기억에 근거하고,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예수에 대한 현재적 경험에 근거하고, 부분적으로는 예수에 대한 미래의 기대에 근거해서 하나의 예수 전승, 즉 예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이야기의 전승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p602 (...) 바울로는 거의 전적으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에 관심을 집중하며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는 사실상 관시을 갖지 않았다. 익명의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를 참으로 유다교 성전 예배에서 합당한 모든 의식의 성취로 보았다. 복음서 기자 마태오는 예수를 하느님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새롭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