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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노아를 놓아주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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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노아를 놓아주라

승리의핑크호랑이 2014. 5. 10. 00:19

그리스도교라는 명목으로 문화를 지배하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문화를 지배한다는 것은 결국 권력을 잡겠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그리스도교의 역할이 권력을 잡고 휘두르는 것이던가? 우리는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였던 역사를 통해, 또한 지금도 근본주의적 종교관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국가들을 볼 때 그 결과물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화 "노아"에 대한 교계 일각의 반응이 뜨겁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움직임(평점테러 등)도 있는 것 같지만 일단 넘어가자.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 "노아" 그 자체와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이다. 사실 요새 워낙 말이 많아서 긴장하고 봤는데, 무난하게 좋은 영화였다.

그러면 영화 노아가 비성경적이라고 하는 주장을 조금 파헤쳐 보자. 첫째, 노아가 잔인하게 묘사됐단다. 그럼 온 세계가 물에 잠겨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평화롭고 아름답게 그리기를 바랐는가? 그들 말대로 "성경적"이려면 노아는 이보다 두 배는 더 잔인해야 한다. 게다가 신의 뜻이 아니라 인간적인 생각에 따라 행동한다면서 인본주의적이란다. 뭐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것인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노아의 모습은 지극히 상식적인 모습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를 볼 때 노아의 이야기가 개인의 신앙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치 않은 디테일에 왜 그리 집착하는가? 방주에 뱀이 타는게 무에 그리 이상한가? 그냥 그 장면은 파충류들이 타는 장면이었다.(나중에 포유류도 탄다.) 꼭 그런 디테일에 집착해야 성경적이라면, 방주에 동물이 한 쌍(창 6:19)씩 타는 것과 일곱 쌍(창 7:2, 참고로 창세기 원역사가 역사적이라면 이 시절에는 아직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이 없을 때이다. 이걸 보면서 창세기가 후대에 쓰인 신앙고백이라는 관점을 생각해 보자.)씩 타는 것 중 어떤 것이 성경적인가? 므두셀라도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성서와 동일시될 수 없는 것처럼, 성서도 우리가 읽는 과정에서(해석)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만큼 더군다나 미디어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주제를 먼저 보자는 것이다. 여름성경학교 학생도 아니고 그런 디테일 때문에 신앙이 흔들릴 정도라면 피아제 이론의 구체적 조작기(7~11세) 수준이다.

네피림, 어떤 네피림이 성경적인가? 네피림은 애초에 성서에서 별로 언급되지 않았다. 네피림이니 루시퍼니 몇 위 천사니 하는 것들은, 성서에 짧게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설정일 뿐이다. 그것이 전승된 것이다. 전승이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짜피 만들어진 세계관으로 보면서 성경적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적으로 비판한다면서) 돌덩어리로 덮인 모습을 비난하는 모습도 봤는데, 황당할 뿐이다.

네피림 얘기가 나왔는데, 죽은(?) 네피림의 본체(?)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은 영화의 주제의식과 부합하는 부분이다. 이 영화는 노아를 주인공으로 하는 신앙 성장기이다. 노아는 정의를 상실한(pre-) 세상에 대해 하느님이 원하시는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어려운 과정을 통해 노아는 정의를 초월한(post-) 신적 사랑과 정의를 발견한다. 방주에 노아의 며느리가 탔느냐의 문제는 2에서 3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견하는 불의함의 보편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영화적 장치로 이해하자. 아무튼 이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신앙의 성숙 과정이다. 감독은 이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영화 노아는 블록버스터 다큐멘터리가 아니며, 고증이 아닌 심리 묘사에 집중해야 한다. (또 그것이 감독의 평소 스타일이란다.) 노아 이야기를 (하느님이 침묵하시는듯한 시대를 살아가는)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서 노아에게 이 정도 고뇌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다.

아무튼 문자적으로 영화 노아가 비성경적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노아 이야기가 주는 풍성함을 스스로 제한할 뿐더러, 그리스도교 신앙을 틀에 가두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노아는 대단히 신앙적이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얕은 이야기들이 충분한 고민 없이 무분별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한국 교회의 큰 문제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들은 과장되어 빠르게 퍼지는 데 비해,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담론은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전에 차별금지법에 대해 마치 법이 통과되면 교회가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확대된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현대 사회의 차별에 대한 교회의 책임 등에 대한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노아에 관한 진지한 논의보다는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그만 노아를 놓아주자. 그 때 이를 통해 얻는 개인의 자유로운 감상은 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아 그리고 노아 일루미나티설은... 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조금만 찾아보면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계열 음모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얘긴지 쉽게 알 수 있으니 패스


이제 노아 떡밥이 한 물 갔고, 글도 영 형편없긴 하지만, 블로그에 뭔가 쓸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든 기념적인 글이니 남겨두자.